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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김영수교수님기사(2004.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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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석환 댓글 0건 조회 2,618회 작성일 04-04-0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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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으로 암 극복…“내일 향해 달려요”;보스턴대회 출전하는 金英洙 중앙대 교수
발행일 : 2004-03-12 A29 [사람] 기자/기고자 : 손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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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전문으로 찍는 사진작가로 알려진 김영수(金英洙·사진학과) 중앙대 교수는 남산이나 한강 주변을 뛰는 것을 하루도 놓치지 않는다.

얼마 전부터 거세게 불기 시작한 마라톤 열풍이나 몸 만들기 때문이 아니다. 암세포와 싸우기 위해 매일 숨이 턱에 차도록 달리고 또 달리는 것이다. 지난 99년 간암 선고를 받은 뒤 수술실에서 간의 3분의 1을 떼어냈다. 그가 암과 싸워 이기기 위해 붙든 것이 마라톤이었다. “수술을 받은 뒤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간암환자의 생존율은 높지도 않다고 하고요. 수술받은 지 보름 만에 복대를 찬 상태에서 무작정 남산에 올라갔습니다. ”

수술받은 다음해인 2000년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사투(死鬪)에 가까운 역주 끝에” 생애 처음으로 완주했다. 김 교수는 마라톤을 통해 생명에 대한 희망을 얻었고, 삶에 대한 새로운 눈을 갖게 됐다고 한다. 잘나가는 사진작가, 교수로서 엘리트주의에 빠져 있었는데 인생을 보는 눈이 넓어진 것이다.

경기중·고를 나온 그를 사진의 세계로 이끈 사람은 아버지였다. “사실 아버지는 제가 의대를 진학한 뒤 외국으로 유학가거든 사진 인화로 아르바이트를 하라고 가르쳐주신 것이었는데 너무 빠져버렸죠. ”

사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그는 성균관대 화학과를 중퇴하고 상업사진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브룩스인스티튜트에 진학했다. 오하이오대 석사를 거쳐 뉴욕 광고사진 스튜디오에서 활동하면서 프로로서의 안목을 키웠다. 당시 그에게는 스포츠카인 포르셰를 모는 것이 성공의 상징이었다.

김 교수는 지난 84년 귀국한 뒤 서른두 살에 중앙대 사진학과 교수가 됐다. 구두와 같은 제품 광고사진을 거쳐 10년 전부터는 요리전문잡지의 표지사진 등을 찍어왔다. 이렇게 강의실과 스튜디오를 오가며 정신없이 달려오다 간암선고를 받았다.

“의사가 수술 후 5년간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으면 괜찮다고 했어요. 오는 12월 20일이 그날입니다. ” 김 교수는 12월을 무사히 넘기는 자축 이벤트로 내년도 보스턴마라톤대회에 참가하기로 했다.

“처음 암세포가 발견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이 나이에 참 재수없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그러나 암을 통해 삶이 완전히 달라졌고요, 지금은 살아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

글=손정미기자 jmson@chosun.com

사진=구자호기자 jhko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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