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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희망을 쐈다 (포커스마라톤 200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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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경두 댓글 0건 조회 3,037회 작성일 04-04-06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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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으로 예순 살이라는 나이에 서브3를 달성한 두 주인공-올해 60세 3개월인 이광택씨와 60세 9개월인 윤용운씨.



지난 3월 9일 오후 4시, 서울 와룡동에 있는 서울 성곽(城廓)에 올랐다. 만 나이로 60세 몇 개월씩인 이광택, 윤용운씨와 함께였다. 지구촌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60대 서브3(마라톤을 3시간 이내에 완주하는 것) 주자를 인터뷰하고, 촬영하는 것이 본지의 기획 의도였다.

이 기록이 대단하다는 것은 미국 보스턴 마라톤의 ‘살아있는 신화’로 일컬어지는 존 켈리(본지 3월호 66∼69쪽 참조)와 비교해봐도 잘 알 수 있다. 66년 동안 보스턴 마라톤에 61회 참가하면서 두 차례 우승을 일구어 냈고, 미국 대표선수로 올림픽에 두 번이나 참가했던 켈리조차도 60세 이후에는 서브3를 달성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1944년 1월생인 이광택씨는 이미 지난 2월 1일에 열린 고성 마라톤대회에서 서브3를 달성한 상태여서 여유가 있었다. 반면 1943년 7월생인 윤용운씨는 아직 서브3를 이루지 못해 약간 부담스러운 눈치였다.

작년 가을, 춘천과 중앙일보 마라톤에서 연거푸 3시간 01분대에 골인했고, 그 이후의 훈련량이 엄청나게 많아서 그를 아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서브3를 낙관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때는 주위의 격려가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감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였다(그는 닷새 뒤 열린 동아 마라톤에서 예상대로 서브3를 달성했다).

두 사람은 대조적이다. 이광택씨는 스톱워치처럼 정확하고, 빈틈이 없다. 술은 못 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를 즐긴다. 가뿐한 몸매에, 정장이 잘 어울린다. 주법(走法)은 물 흐르듯 유연하다.

윤용운씨는 자유분방한 로맨티스트다. “한강을 바라보고 뛰면 가슴에도 강이 흐른다”는 식으로 표현한다. 술을 즐기지만, 고독을 더 좋아한다. 운동복 차림에 러닝화를 신고 다니는 게 편해 보인다. 통뼈여서 기운 깨나 써 보이는 외모에 걸맞게 파워풀한 주법을 자랑한다.

성향이 다른 두 사람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마라톤이다. 마라톤 중에서도 ‘달리는 기쁨’ 운운하는 싱거운 소리가 아니라, 자신들이 설정한 한계 목표에 몸과 마음을 완전히 내던지는 ‘몰입의 경험’이 그들을 피를 나눈 형제처럼 이어주고 있는 것이다.

사진 촬영을 위해 들른 성곽 부근 정자에서는 때마침 60대 노인 네 명이 소박한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그들은 소주잔을 돌리며 노래를 불렀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봄날은 가안다∼.’

돌아올 수 없는 청춘을 아쉬워하는 노인들의 노래가 애잔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같은 연배의 ‘큰형님들’은 언덕을 힘차게 오르내리며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묘한 분위기였다. 마라톤에 집중하며 새로운 젊음을 찾은 60대와 술로 회한을 달래고 있는 같은 세대의 노인들….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이 먹어가야 하는 것일까.

[국내최초 60대 서브3]

아마추어 러너들 중에는 잘 뛰는 사람을 보면 ‘선수 출신’이라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래야 자신들의 부족한 실력과 노력이 보상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광택씨도 예외 없이 ‘선수’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사실도 아니지만, 설령 선수로 활동했다고 해도 그건 벌써 수십 년 전 일일 터인데도 말이다.

40여년(!) 전인 대구중학교 2학년일 때 잠깐 학교 대표선수로 뛴 적은 있다. 체육교사에 의해 학교 대표 5명 중 한 명으로 선발된 것이다. 그리고 1주일 동안 연습한 뒤 경상북도 대항 대회에 참가했다. 결과는, 당연히 예선 탈락이었다. 육상선수(?)는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었다. 고교시절에는 잠시 핸드볼 선수로 활동했다. 그러나 그 또한 특별활동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가 ‘선수 출신’이라는 오해를 받는 것은 달리기 실력이 출중하기 때문이다. 27쪽의 개인 기록표에 잘 나와 있지만, 4년 전 처음 참가한 풀코스 기록이 3시간22분이었다. 그리고 개인 최고기록을 달성(2시간54분50초)한 이번 동아 마라톤 이전까지 50대 중반이라는 ‘한물간’ 나이에 서브3를 이미 일곱 차례나 달성했으니 ‘의심’이 따라다니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건강 위해 26년 전부터 조깅 시작

그가 달리기를 시작한 건 건강 때문이었다. 대학 졸업 뒤 천양사라는 기계 제작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그는 1976년 개인 회사를 설립했다. 열 교환기와 공기 조화기 등을 만들어 선경·현대자동차 등에 납품하는 이화기계(주)로, 지금도 그는 이 회사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회사를 만들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4층 계단을 걸어 올라갔는데, 현기증이 생기면서 구토가 나오려고 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다음날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1978년 가을 무렵의 일이었다.

뛰는 사람이 거의 없을 때였다. 서울 반포, 지금은 빼곡히 아파트들이 들어섰지만, 당시에는 단독주택들이 많았다. 새벽에 뛰다보면 그의 발소리에 맞춰 온 동네의 개들이 다 깨어났고, 개들이 짖는 소리보다 주민들의 원성이 더 커지기 일쑤였다. 골목에 가로등이 없어서 뛰다가 넘어져 다친 경험도 많았다. 건강을 위해 테니스도 배워 보았지만, 달리기의 맛을 따라올 수가 없었다. 뛰고 난 뒤의 상쾌함과,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뒤의 성취감은 어떤 운동에서도 느낄 수가 없었다.

처음 ‘머리를 얹은’(마라톤을 완주한) 대회는 2000년 10월 3일의 통일 마라톤대회였다. 10km나 하프 마라톤대회 참가 경험이 없는 초보이면서도 덜컥 풀코스를 신청했다. 무턱대고 많이 뛰기만 하면 되는 줄 알고 1주일에 170km씩 뛰었다. 사실은, 그해 3월의 서울과 동아 마라톤 풀코스도 신청했었다. 그러나 지나친 훈련으로 부상을 입고 포기하고 말았다.

작년부터 인터벌 훈련은 포기

첫 도전은 처절했다. 구파발에서 임진각을 왕복하는 코스였는데, 27km 지점부터 걷다 뛰다를 반복했다. 발바닥은 온통 물집투성이고…. 고군분투하면서도 3시간22분이라는 좋은 기록에 결승점을 밟았으니, 그의 달리기 실력은 타고난 것인가.

모든 게 마찬가지이지만, 마라톤 또한 뿌린 만큼 거둔다. 기록은 철저하게 훈련에 비례하는 것이다. 그는 이제 ‘훈련’이라는 말을 안 쓴다. 마라톤이 완전히 생활화돼 있는 탓에 이젠 자연스럽게 ‘습관’이라고 말한다.

그의 ‘습관’은 새벽 4시 반 기상에서 시작된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밤 10시 반 무렵이므로, 하루 수면 시간은 6시간쯤 된다. 자리에서 일어나면 1주일에 한 번 언덕훈련을 하기 위해 남산에 갈 때를 빼고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강으로 나간다. 한강이나 남산에 가면 보통 1시간∼1시간 반, 거리로는 12∼20km를 뛴다. 일요일에는 25∼30km 지속주를 한다. 1주일에 달리는 거리는 보통 100km 정도.

작년까지는 인터벌 훈련을 했다. 그러나 진이 빠지는 느낌이 왔다. 작년 기록이 전체적으로 저조한 것은 인터벌 훈련 뒤의 체력 저하 탓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나이도 있고 해서 이제 인터벌은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 트레드밀(러닝머신의 정확한 표현)은 이용하지 않는다. 10여년 전에 트레드밀에서 속도 조절을 잘못해서 두 번 넘어진 적이 있다. 그때 심하게 다쳐본 뒤로는 트레드밀과의 인연을 끊었다.

운동화는 보통 네 켤레를 두고 신는다. 연습용 둘, 막 신는 것 하나, 시합용 한 켤레 등이다. 체중이 58kg밖에 안 나가 시합용 신발은 엘리트 선수들이 신는, 18만원짜리 초경량 레이싱화를 신는다. 훈련량이 많아 신발은 달포 정도면 교체해야 한다.

근력운동은 팔굽혀펴기와 복근운동만 한다. 하체 근력을 키워 준다는 오리걸음 같은 운동은 후유증이 오래가서 하지 않고 있다. 팔굽혀펴기도 15개씩 4세트 정도만 한다. 1년에 두 번 식이요법을 실시한다. 동아와 춘천 대회를 앞두고서다.

대회 1주일 전 3일간은 고기와 채소, 두부, 달걀만을 먹는다. 나머지 사흘은 밥과 떡 위주로 탄수화물을 섭취한다. 하지만 마라토너들이 금기시하는 라면도 그는 꺼리지 않는다. 편안한 주법처럼, 식이요법에도 유연성이 있는 것이다.

체질적으로 술을 못 한다. 소주 석 잔과 맥주 한 병이 정량이다. 이나마도 달리기를 한 뒤 늘어난 주량이다. 혈압이 약간 높지만(90∼135), 서브3 주자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담배는 기록단축에 탄력이 붙기 시작한 20년 전에 끊었다. 별의별 수단을 다 써도 못 끊던 담배를, 아이들과 금연 약속을 한 뒤 끊었다는 그의 말에서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가장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65세까지 서브3 하고싶다”

모범적인 가장이다. 7세 연하인 부인(박현숙)의 말을 잘 듣는다. “나이 들어서 마라톤이라는 좋은 취미를 가진 건 좋은데, 울트라 마라톤은 아무래도 몸 상할 우려가 있으니까 하지 말라”는 부인의 엄명에 다소곳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이 같은 모습을 두고 공처가이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지만, 그보다는 부인이 미인이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유력해 보인다. 슬하에 아들만 셋을 두고 있다. 장남은 1973년생이고, 그 밑의 둘은 1975년생으로 쌍둥이다. 요즘은 이 쌍둥이 중의 한 명이 그의 회사일을 거들고 있다.

생활력 강하다는 이북 출신이다. 평안북도 선천이 고향으로, 한국전쟁 전인 1948년에 가족들을 따라 월남했다. 고향에서는 부르주아여서 핍박이 심했기 때문이다. 대학(한양대 기계과) 졸업 뒤 7년 동안 직장생활을 한 뒤 창업을 한 것도 선조에게 물려받은 독립정신이 밑바탕 됐을 것이다.

1976년 설립한 이화기계(주)는 전 직원이 30명이다. 작년 매출은 40억원 선. 10년 전 매출이 60억원이었던 데 비하면 많이 준 셈이다. 설비기계 제조업이어서 불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그래서 그는 요즘 고민이 많다.

업종 전환을 해야 할 것인가, 중국으로 진출한 다른 회사들과의 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등등…. 마라톤이 고마운 것은 그 때문이다. 뾰족한 해결책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달리다 보면 회사 문제 같은 열 받는 일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활력이 재충전되기 때문이다.

2000년 가을에 100회마라톤클럽에 가입했다. 그 전까지는 홀로 뛰는 ‘독립군’이었다. 20대에서 70대까지, 또 변호사와 의사, 경찰 공무원에서부터 음식점 사장과 종업원까지 다양한 연령층과 직업의 사람들과 나눔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이 동호회 활동의 장점이다. 달리기에 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것도 강점이다. 그의 경우엔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기록이 10분 가량 단축됐다.

동호회에선 아들뻘 되는 회원들도 그를 ‘큰형님’으로 부른다. 매사에 빈틈이 없으면서도 딱딱한 관계를 만들지 않으려는 그의 유연함과 가슴 넓음을 봐서는 딱 맞는 별명일 듯싶다. ‘빨간 모자’라는 애칭도 있다. 2000년 가을, 춘천 마라톤에 나갈 때였다. 마땅한 모자가 없어 큰아들의 빨간 모자를 쓰고 나갔다.

원래 검은색 계통을 선호하고 빨간색을 싫어하는데, 딱히 방법이 없었다. 큰아들의 모자에 땀 배출용 구멍을 뚫어서 쓰고 나갔더니 주위에서 “해병대 조교 같다”며 계속 쓰길 권유했다. 그 이후로 빨간 모자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100회마라톤클럽에서도 빨간 모자는 서브3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풀코스를 100회 완주한다거나,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하는 데는 연연해하지 않는다. 달리기 자체가 즐거우니까 뛸 수 있을 때까지는 뛰어볼 생각이다. 천천히 뛰면서 달리기 자체를 즐길 마음도 없지 않지만, 속도를 늦추면 당장 “어디 아프시냐?”며 내버려두질 않는다.

욕심은 있다. 매년 서브3를 하고싶은 바람이다. 65세까지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건 그의 희망사항에 불과할까.

[국내 최고령 서브3-윤용운]

지난 3월 14일, 동아 마라톤이 끝났을 때 윤용운씨는 성취감과 허탈감을 동시에 맛봤다. 단 9초 차이로 달성한 서브3!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이 염원하는 꿈의 기록을 이룩하자 행복한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허전한 마음이 밀려드는 것 또한 어찌할 수가 없었다. 내심 목표로 삼았던 2시간56분대의 기록을 이루지 못해서인가….

골인 지점인 잠실종합운동장 부근에서 몇몇 지인들이 축하주를 내겠다며 그를 이끌었다. 평소의 그라면 허리띠를 풀고 술잔을 나눴을 터이지만, 그날은 잠깐 자리를 지키다 조용히 도망쳐 나왔다. 그리고 혼자 남산의 단골 주점을 찾았다. 빈대떡을 놓고, 막걸리를 마시며 그는 오로지 마라톤만을 생각했던 지난 몇 달을 돌이켜봤다.

엽기적인 ‘폭주 기관차’

그의 훈련 방식은 한마디로 엽기적이다. 잠이 없는 편이어서 자정 무렵에 잠자리에 들어 새벽 5시 정도에 일어난다. 훈련은 대체로 오후에 시간 날 때마다 하지만 이따금 한밤중이나 새벽에 뛸 때도 있다.

지난번 설 때가 그런 날이었다. 설 사흘 전이었는데, 영하 18℃여서 엄청나게 추웠다. 불현듯 ‘이런 날 한번 뛰어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밤 11시 55분에 여의도를 출발했다.

한강변을 거슬러 달려 광진교를 지나 천호대교를 건넜다. 그리고 전농동 로터리를 지나 휘경동의 집에 도착하니 새벽 3시 50분이었다. 거리로는 37km쯤 될까.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처럼 진공 상태를 느끼며 뛰니까 ‘이러다 죽으면 누가 알까’ 하는 얄궂은 생각도 들었다. “아직도 철이 안 들었다”며 얼굴 구석구석에 주름이 잡히는 웃음을 짓는 사람, 윤용운은 그런 사람이었다.

훈련 방식이 엽기적이다 보니 달리기 일지를 쓸 수가 없다. 한 달에 300∼460km 정도를 뛸 것이라고 대략적인 ‘덧셈’만 하고 있다. 그 덧셈은 보름에 한 번은 36km, 한 달에 한 번은 45km를 뛰고, 1주일에 한 번은 12km 인터벌을 실시하고… 등등의 훈련을 대충 종합한 것이다.

1주일에 두세 번은 트레드밀에서 뛴다. 여기서 뛰는 방식도 일정하지가 않다. 1시간을 뛰기도 하고, 2시간 반을 달리기도 하는 식이다. 속도도 시속 17km로도 달리고, 18km로 뛰기도 한다. 그 정도 속도로, 그렇게 오래 달리니 어떤 트레드밀이 견뎌낼까. 그동안 그가 다니는 서울 무교동의 프라임 헬스클럽(02-319-0971∼2)에서 고장낸 트레드밀이 한두 대가 아니다. 아마도 트레드밀에서 달리기 대회가 있다면 틀림없이 1등을 차지할 것이다.

달릴 때는 완전 몰입형이 되는 사람. 이런 사정을 아는 후배들이 그를 두고 ‘폭주 기관차’니 ‘탱크’니 ‘별종’ 또는 ‘독종’이라고 불러도 그는 반박할 말이 없다.

자신의 몸이 마라톤에 안 맞는다고 생각한다. 얼굴도 크고, 통뼈이고…. 신체 결함(?)을 그는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극복했다. 근력운동을 중시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하체 강화운동뿐 아니라 팔치기(팔을 힘차게 흔드는 동작)를 잘할 수 있는 상체운동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복근운동은 필수다. 집에서도 텔레비전을 보며 복근운동을 700개씩 한다. 음식도 철저하게 고단백, 저칼로리 음식만 골라 먹는다. 그래서인지 그의 체지방률은 현재 7%에 불과하다.

동아 마라톤을 앞두곤 걸을 때도 조심했다. 혹시라도 넘어져 부상을 입을까봐. 음식도 조심했지만, 인상 고약한 사람과 마주치는 것조차도 피했다. 오직 마라톤에만 초점을 맞췄던 지난 몇 달. 마라톤은 그에게 과연 무엇이었을까.

“왜 뛰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왜 뛸까? 젊은 날에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회한이 남아서일까. 글쎄…. 어쩌면 다시 산에 오르기 위해 달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고향이 산이라고 생각한다. 마라톤 기록 단축에 가장 도움이 된 것도 산행이라고 여길 정도다. 실제로 그는 대단한 실력을 지닌 산악인이다. 도봉산을 경기도 의정부 쪽에서 올라가 서울 우이동의 북한산으로 내려오는 코스가 있다. 보통 사람들은 이 코스 산행에 5시간 반 가량이 걸리는데, 그는 2시간30분이면 등산을 마친다. 일이 많지 않을 땐, 이런 새벽 산행을 한 달이면 보름도 한다.

마라톤을 시작한 것도 등산과 관련이 있다. 지난 2000년, 당시 소속돼 있던 산악회원들이 춘천 마라톤대회에 참가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전부터 풀코스 완주자들이 골인하는 감동적인 표정을 보고 마라톤을 동경해 오던 터여서 그도 풀코스를 신청했다. 앞의 이광택씨처럼 10km나 하프 마라톤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였다. ‘머리를 얹은’ 기록은 4시간11분. ‘초짜’의 무모한 도전치곤 괜찮은 편이었다.

“2시간40분대가 최종목표”

마라톤, 그거 해보니 재미있었다. 대회에 참가해 앞선 주자들을 하나씩 추월하고, 환호하며 골인점에 들어오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무엇보다 그를 매료시킨 건 연습 과정이었다. 적당한 언덕을 10여 차례씩 오르내리는 훈련이나, 숨이 턱에 차도록 달리는 인터벌 훈련(그는 미국의 바트 야소가 개발한 ‘야소 800’ 훈련법을 차용하고 있다)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다 보니 몇 차례 대회에 참가했고, 기록이 얼마인지는 중요하지가 않았다(사실, 그에게서 마라톤 개인 기록을 알아내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집에도 완주 메달이나, 작년까지 도맡아 했던 ‘60대 1등 상장’ 등이 보관돼 있지 않을 정도다. 버리고 떠나기! 그의 지나온 삶은 어쩌면 ‘과거에 연연해하지 않는 남자’로 요약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1943년 7월 2일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에서 2남7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경주의 안강중을 거쳐 인천 선인고를 졸업했다. 고교 졸업 뒤 그는 자신의 젊은 날을 결정짓는 중대 사건을 저지르고 만다. 서울의 괜찮은 대학에 합격했으나 집에서 마련해준 등록금으로 촬영 장비를 사버린 것이다.

그때부터 집에서는 ‘내놓은 자식’ 취급받고, 대학과는 인연을 끊은 채 단편영화 기획 및 제작 활동에 빠져들었다. 당시 그가 소속돼 있던 모임은 ‘Film 70’이라는 단편영화 제작 동인이었다. 여기에서 활동하며 영화감독 정지영씨 등과 교분을 쌓았다.

고려대를 졸업한 7세 연하의 부인 옥영희씨를 만난 것도 이 시기였다. 이광택씨와는 가족관계에서 공통점이 많다. 아내가 똑같이 일곱 살 아래고, 아들만 셋을 둔 점도 같다. 윤용운씨의 큰아들(26)과 막내(22)는 현재 일본 유학 중이고, 둘째(23)는 육군본부 군악대에서 드럼을 치며 군복무 중이다.

아이들이 커가자 가장의 부담을 느낀 그는 삼덕공사라는 곳에 전무로 영입돼 직장생활을 하기도 했다. 정부기관의 행사를 기획·진행하는 업체였다. 그리고 6년 전, 인테리어와 리모델링 전문업체인 서울DN인터내셔널을 만들었다. 현재 직원은 7명.

80세까지 마라톤을 하고, 산을 오르자는 ‘80동우회’ 회원이다. 그런데 약간의 문제가 있다. 회원들은 동호회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데, 그는 이 모임을 산악회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산에 대한 짝사랑이 집요하다고 할까.

청춘을 충무로에서 보내 ‘딴따라’ 기질이 있을 법도 하건만, 의외로 수줍음을 탄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안 좋아하고, 낯을 가린다.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일단 코드가 맞는다는 판단이 서면 있는 것 없는 것 다 내줄 정도가 된다. 철저한 외골수인 것이다.

이광택씨는 존경의 대상이지, 라이벌이 아니다. 그의 라이벌은 오직 한 명, 자기 자신이다. 그만큼 자신에게 엄격하고 혹독하다. 왕복 3km의 남산 코스를 3회 뛰기로 한 날, 두 번쯤 뛰다보면 ‘오늘은 이만 할까’라는 유혹이 생길 때가 있다. 이렇게 마음이 흔들리면 그는 가차없이 자신에게 벌칙을 준다. 두 차례를 더해 다섯 번을 뛰도록 계획을 바꾸는 것이다.

중요한 대회를 앞두곤 2∼3개월 금주를 선언한다. 금주 기간 중에 자신과의 약속을 어긴 날에도 어김없이 남산으로 향한다. 밤 11시건, 새벽 1시가 됐건 그는 남산을 달리며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는 것이다. 모두가 잠든 시간, 혹시라도 남산에서 밤도깨비 같은 그와 마주친다면 ‘모종의 이유로 벌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여겨도 틀림없다.

목표가 세 가지 있다. 마라톤에서 2시간40분대 기록을 작성하는 것과, 70세가 되는 2013년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하는 것이다. 마지막 하나는 만년설(萬年雪)을 머리에 이고 있는 히말라야로 떠나는 것이다. 이 목표들을 위해서도 그는 늙을 시간이 없다.

이광택씨와 윤용운씨는 행복하다. 어김없이 찾아온 봄날, ‘봄날은 간다’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회한에 젖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찾아 나섰기에. 두 사람을 바라보는 후배들도 행복하다. 60대가 돼서도 그들처럼 서브3를 달성할 수 있다는 희망을 그들에게서 발견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경기장에서 그토록 쏜살같이 달려간 것은, 신기록이 아니라 젊은 날의 애인처럼 눈부신 희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유인종 기자
김영선 사진 기자


2004.03.26 14:1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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