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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숙명인가 해방인가? (죽음에 대한 종교철학적 성찰)

페이지 정보

작성자 황태식 댓글 6건 조회 2,831회 작성일 15-04-16 04:56

본문

연세대 정재현교수
 
1. 인간에 대한 관심은 죽음에 대한 관심이기도 하다
죽음에 대한 잠시 성찰로 삶에 대한 깊이 높이 넓이를 더할 수 있다.
 
 
2. 죽은 아기를 안고 거리를 방황하는 어머니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머니는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우리 아기 좀 살려 주세요!!>하고
미친 듯이 절규한다 그러나 죽은 아기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때 나이 지긋한 한 사람이 어머니에게 알려 준다 <가서 부처를 찾아 보시오.
그가 아기를 살릴 수 있을 것이오.> 사정 이야기를 들은 부처는 아기 어머니
에게 말한다 <마을로 가서 겨자씨 한알을 구해 오시오. 그러나 반드시 대대로
죽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 집에서 구해 와야만 하오.>
 
아기 엄마는 겨자씨 한알은 쉽게 구할 수 있을지 몰라도 대대로 아무도 죽지
않는 집을 찾을 수는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만큼 우리는
죽음과 함께 살고 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어두운 인상 때문에 일상 속에서
죽음을 삶의 가장 바깥 자리로 내몰고 있지만 않은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통해 어쩌다 죽음을 만나기는 하지만 한번쯤 잠시라도
나의 죽음을 돌아보며 물어 볼 수는 없겠는가? 왜 사는가? 왜 죽는가? 삶을 향해
물음을 주는 죽음, 삶의 바깥에 내몰려 있는 죽음을 끌고 들어와 죽음이 삶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성찰해 보지 않겠나?
 
 
3. 삶에 대해 물음을 주는 죽음은 삶에 대한 이해, 바로 인생론에 해당될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 덩어리가 영원할 거 같지만 저 태양의 수명 조차 50억년
이라지 않는가? 태양이 지구에 전해주는 온기가 크지 않게 아주 조금만 하강해도
지구는 생명이 살 수 없는 땅이 되고 말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지 않은가?
 
인간의 본능은 죽음에 저항한다. 인간의 욕망 즉, 식욕과 성옥은 한계가 없다.
그러나 죽음을 일상에서 멀리 밀어낼떄 삶은 일그러지고 만다
 
 
4. 죽음을 삶 안에 끌어 들일 때 죽음은 축복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인체를
구성하는 세포는 부분적으로 생성 사멸을 거듭해 7년이면 완전히 다른 세포들로
교체된다지 않은가? 성서에도 말한다, 사람아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라 그러고 보면 우리 삶의 매 순간이란 죽음의 가능성이 알알이 박여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죽음은 자기 자신에 대해 세밀하게 주목할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5.죽음은 <현재를 사랑하라>고 구체적인 실존 방안을 제시해 준다. 시간의 흐름을 보면
미래는 기대를 통해, 과거는 기억의 형태로 흘러 오지 않은가? 현재가 없으면 미래도
과거도 없다. 이는 모두 현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것이 아닌가?
 
임사체험을 겪으며 죽음 직전으로 갔다가 돌아 온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증언도
참고가 될만하다. 그들은 길가의 풀 한포기, 무생물 조차도 아름답고 소중하게 보인다며
임사체험 후 삶의 태도가 달라졌음을 말한다. 착한 척 하는 태도가 아니라 진정한 자신을
찾은 것이다. 임종의 상황에서 절실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인간은 가식적 태도가 아니라
진정한 인간의 본래 모습에 끌리게 되는 것이다.
 
 
6 결론은 <자신의 현재를 사랑하라>는 데로 다시 귀결된다 임종의 순간에 다시 더 보게 해달라고
안달할 게 아니라 지금이 당겨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이미 죽은 사람으로 살자. 중세 시대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오는 귀족 장군이 탄 마차에 두 사람의 노예가 동승해 잠시도 쉬지 않고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 하고 속삭여 준다고 한다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을 기억하라> 이다. 너는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이다와 같은 것이 아닌가? 현재를 사랑하라
그리고 죽음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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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황태식님의 댓글

황태식 작성일

아가씨에게 청혼하러 가는 길? 마음 어지간히 들뜨고 바쁠터인데
하필이면 그때 동네 여염집 아줌마 눈치없이 걸기적거리네요

당근 밀치고 걸음 재촉할 판인데, 그거이 딱지맞는 이유가 되네요
넘 엄격 야박하시네요 한번만 너그러이 봐주시질 않고서리~~

구춘옥님의 댓글

구춘옥 작성일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처럼 늘 가까이에 있네요.
어느 시인처럼 소풍끝나는날 아름다웠노라고 말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을런지?
 
지나가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먼 미래를 앞당겨서 걱정하기 보다는
지금 현재를 소중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겠지요.
 
아가씨에게 청혼하는 가는길에 한여인을 밀치고 지나가는 걸 보고
청혼을 거절했다는 말에 큰 감명이 있네요. 어찌 삶을 살아야 하는지?

황태식님의 댓글

황태식 작성일

사무총장님!! 수고 많으십니다. 바쁘신 중에 걸음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일전에 사무총장님 닉네임이 임꺽정이라 들었는대 아직도 그런지
뵐때마다 궁금합니다.담에 지나칠때 살짝 귀뜸 주세요~~

임종석님의 댓글

임종석 작성일

황태식 님! "인생은 멋찌시다"라고들 하는데  역시 멋쟁이신 점이
  인생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것에 더욱 보기가 좋습니다

인생은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누구나 주어지는 일생의 "시간여행"
 이라고도 하고 또한 마라톤 여정이라 비유하기도 하지요

우리에게 소중하고 귀중하게 주어진 인생여행이라면
 사는 동안 줄거웠던 만남,
  고마운 사람, 사랑하고 싶은 사람,
    함께하고 싶었던 사람으로  좋은 기억에
      남았던 추억을 간직하고픈 바램이겠지요

여기에 우리 "100회클럽"의 회원 분들은
 "우리 함께"라는  표현으로
 매일 매일 새로운 날에 함께하는 마라톤여정속에서
  "런하이"의 희열도 느끼며 베풀고 나누고 싶습니다...

황태식님의 댓글

황태식 작성일

재복님 답글 감사합니다...
죽음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마 누구에게나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다만 죽음을 떠올리며 겸허하고 절실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죽음이 축복일 수도 있으리라는 하나의 결과론은 성립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볼 수는 있을 것 같네요...사람이 확신하면 귀신이 옆애서 듣고
코웃음을 웃는다지요?

이재복님의 댓글

이재복 작성일

삶과 죽엄!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省察

어머니의 죽엄 통해서 강론처럼
얼마만큼 깊이있는 삶을 죽엄을 그때 맞이할지 늘 무겁게만 느껴 집니다

뉘라서 자유스러울수 없겠지만
나이가 조금씩 더해 가면서 그런 생각도 많이 가져가게 되네요

종종 훌쩍 팔십이 넘었을때의 꿈을 현실처럼 꿀때도 또한 받아들일 때도 있어요
기억될 즐거운 소풍길은 아니지만 죽엄을 축복으로 받기엔 아직 !

어머니 처럼 의연하게 맞을수만 있다면
늘 그렇게 빌어 보곤 합니다

깊이를 더한 강의에 진지하게 몰입하여 수고 롭게 사고와 慧眼을 주시는 성님  감솨~~~
남산의 벚꽃은 피어올라 아직 지기 전이니 머리도 식힐겸end 꽃구경 한번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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