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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가 바뀌면 삶도 바뀐다(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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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영우 댓글 0건 조회 4,075회 작성일 03-09-10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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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가 바뀌면 삶도 바뀐다!(마라톤맨의 산책로에서 펌)
현재 일본의 최대 베스트셀러 작가이면서 전세계적으로도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마라톤 광이라는 사실은 국내 독자들에게는 비교적 덜 알려졌습니다.

32세에 전업작가를 선언한 직후 달리기를 시작한 이래 50대로 접어든 지금까지 하루키는 16번의 풀코스 마라톤 완주는 물론 100km 울트라마라톤 완주, 그밖에 수많은 달리기 대회에 참가해 왔다고 하는데, 아마추어로서는 베테랑에 준하는 경력의 마라토너인 셈이지요.

최근 발간된 일본의 격주간 잡지 'BRUTUS'(6월 1일자)는 하루키와의 특집 인터뷰를 통해 그가 보는 신체와 정신의 관계, 육체의 윤리성에 대해 적고 있습니다. 관심있으신 분이 있는 것 같아 그 내용을 요약해드립니다. 본래는 문답식으로 상당한 양이 진행된 인터뷰인데, 다 옮기기는 조금 부담스럽군요.

(이하 인터뷰 요약)
전업작가를 선언한 32세 이후 부터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의 나는 하루 60개피 이상의 담배를 피워대는 헤비스모커였으나,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담배를 끊었다. 1천장의 소설을 일 년쯤 걸려서 쓰고, 다시 그것을 10번이건 15번이건 처음부터 고쳐쓰는 것이 나의 소설 작업인데, 그 과정이란 정말 머리 속이 하얗게 느껴질 정도로 힘들고 고된 작업이며 대단한 체력과 인내력이 요구된다. 모처럼 소설가가 되었으니 끝까지 해낼 수밖에 없다고 작정한 그 무렵에 그렇다면 체력과 인내력을 키우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모색했다. 그것이 달리기이다.

지난 16년 동안 나는 1주일에 6일, 하루 평균 1시간 정도를 쉬지 않고 달려왔다. 일년이면 달리기를 쉰 날은 불과 몇일이 안될 것이다. 제법 바쁜 인기작가로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달릴 수 있는 비결은 하루를 아예 23시간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어느 날은 달리고 싶지 않은 날도 있다. 그러나 뛰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으로 습관을 들이면 그런 날도 달릴 수 있다. 인생의 고통에 비한다면 하루 10km 달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리고 실은 달리면서 고통이 아닌, 즐거움을 느낀다.

정기적으로 운동을 시작하면 그때부터의 체력이 그대로 유지된다. 나의 경우는 33세에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50대로 접어든 지금도 그때의 체력이 유지된다고 생각한다. 순발력은 나이가 먹으면 어쩔 수 없이 떨어지는 것이지만 체력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달리기는 빨리 시작할수록 좋다.
작가의 일이란 집중력과 지구력이란 동전의 양면으로 이루어진다. 가령 4년을 걸려 쓴 작품이 있다고 할 때 그 4년 동안 매일 쓰는 것은 아니고 한 석달을 집중적으로 빼내고(글을) 조금 다른 일 하는 체 하다가 다시 석달을 틀어박힌다.

실은 그 석달 안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보통 2주이다. 대부분의 모든 것이 그 2주에 정해진다. 그 2주간의 시점에 도달하기 위해서 그 이전의 두달 반이 필요한 것이다. 이때에는 매일매일 책상 앞에 앉아서 뭐든지 좋으니까 계속 쓴다. 기분이 내키지 않든, 힘들든, 즐겁든 그냥 쓴다. 새벽 4시부터 점심 때까지 계속 쓰다보면 어느날 '들어가고 싶은 바로 그곳'(정확히 옮긴다면 하루키는 가버린다, 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에 도달하게 된다. 결국 지구력이 뒷받침되어야 집중력이 생기는 것인데, 이것은 장거리 러닝과 매우 흡사하다.

20대나 30대에는 원고 마감이 닥쳐야 밤을 새워 몰아쓰는 때도 있었으나 40, 50대가 되면 그런 파워는 떨어진다. 마치 홈런 타자의 타구가 어느날 펜스 앞에서 떨어지거나 평범한 외야 플라이가 되는 때가 오는 것이다. 아주 희귀한 천재가 있다면 그렇지도 않겠지만 나는 그런 천재가 아니니 그런 파워를 유지하는 것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만들어놓자고 계획했다. 두달 반 정도 그동안 열심히, 또박또박 하고 있으면 2주간의 중요한 시기가 온다는 시스템인데, 그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육체적인 힘이 필요하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때는 소설가란 그런 일을 하면 정작 글은 쓰지 못할 것이란 충고를 많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거꾸로 건강하면 건강할수록 자기 안에 있는 불건강한 것이 나온다고 믿는 편이다. 소설은 불건강한 것인가? 틀림없이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독이 없으면 소설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 독을 꺼내기 위해서 몸 자체는 건강해야 한다. 달리 표현하자면 소설은 자기 안에 숨어있는 짐승을 꾀어내는 작업이다. 그때 체력이 없으면 그 짐승이 소설가 자신을 잡아먹을 것이다.

물론 문학사에는 랭보, 다자이 오사무,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처럼 그 독, 그 짐승과 더불어 일상을 산 이들도 있긴 하지만, 그들의 작업은 오래 가지 못했다. 나는 일찍 죽거나 자살할 생각은 전혀 없으니, 좋으나 싫으나 장거리 러너일 수밖에 없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마치 자신 안의 깊은 곳에 샘이 있어 그 물을 매일 길어와야 하는 작업이다. 매일매일 기어내려가 물 한 바가지 푸고 다시 올라오는 시지푸스적인 노동을 계속하다보면 앞에서 말했던 마지막 2주간의 중요한 시기, 곧 '들어가야 할 곳'에 이르는 때가 온다. 그때는 기어내려가는 것이아니라 원하면 이미 몸과 정신이 그곳에 옮겨져 있는 때이다. 그런 초자연적인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부지런히 내려갔다가 올라와야 한다. 그것이 조건이다.
나는 인간의 정신과 육체는 서로 대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예를 들면 이가 아프면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다. 육체적인 훈련이 결여된 정신 일변도의 수련이나, 또는 그 반대의 경우이나 모두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지금과 같은 정보 과다의 시대는 정보가 많은 만큼 가치 기준도 다양해서 우리로 하여금 무엇이 옳은 것은지에 대한 판단을 어렵게 만들고는 한다. 바로 그래서 나는 앞으로는 육체에서 비롯되는 자연스러운 윤리성을 따르는 것이 중요한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야성의 지적인 복권이라고나 할까. 이때 중요한 것이 몸이 말하는 것에 대해 지성이 얼마나 균형된 감각으로 귀를 기울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지난 16년 동안 달리면서, 그리고 16번의 풀 마라톤을 포함한 여러 달리기 대회의 경험을 통해서 나의 몸매, 스타일, 식생활,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체까지, 많은 것이 바뀌었다. 변하는 몸을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마치 사춘기의 여자애가 거울 앞에 서있는 느낌과 비슷하다. 보기 싫은 군살이 없어지는 것을 보는 것은 누구에게나 즐거운 일일 것이다. 문체로 보자면 무엇보다 호흡이 길어졌다는 점이 달라졌다.

20여년 전, 재즈 카페를 하면서 음악의 리듬에 바탕을 둔 글을 쓸 때와는 완전히 다른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4비트에서 8비트, 16비트까지 음악적인 리듬이 있는 문체가 나쁘다는 아니다. 다만 음악의 리듬에 토대를 둔 글은 긴 글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할 뿐이다.

최근에는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를 시작했는데, 그 이전(96년)에 100km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그러나 역시 즐겁고 좋았다. 아침 5시에시작해 저녁 때까지 달리다보면(기록은 11시간 42분) 어느 지점부터 자연스럽게 사고가 달라진다. 가령 60km 지점까지는 평소의 페이스로 담담하게 달릴 수 있었는데, 그 이후부터는 사고가 바뀌어져야만 달릴 수 있었다.

사고를 바꾸고 싶어서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바뀌어진다. 이때부터는 더 이상 다리 힘만으로는 달릴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그때부터 온몸의 다른 부속품들이 다리를 커버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마치 힘을 내라, 우리가 대신해주겠다, 라고 다른 부속품들이 다리에게 외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달리다보니 이렇게 좋은 느낌도 있구나 하는 그런 경험이었다. 그때를 넘어 85km를 지나면서는 거짓말처럼 고통이 사라지고, 다 지나갔구나, 넘어왔구나 하는 느낌 뿐이었다.

골인했을 때의 느낌은 정말 반가운 것이었다. 설명할 수 없지만 이 경험이 반드시 미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명하면 차라리 가벼워질 것 같은 묵직한 감동이었다.

가끔 달리기 예찬을 할 때면, "신체장애가 있고 스포츠를 못하는 사람도 좀 생각하라"는 지적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거꾸로 건강한 몸을 갖고 있으면서 그것을 무신경하게 함부로 다루고 있는 사람이 보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98년) 6월 나는 호노룰루에서 열린 맹인마라톤 15km 코스에 반주자로 나가 눈이 보이지 않는 러너와 하나의 끈으로 연결되어 달릴 기회가 있었다. 하나의 끈이 서로 다른 조건의 두 주자를 하나로 연결해 주고 있었다. 행복한 경험이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장애가 신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신체를 진정으로 의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김명렬씨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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